2015년 11월 29일 일요일

안철수 혁신전대 제안 (사실상 조기 전대) 6가지 문제

11월29일 일요일 안철수의원이 기자회견에서 문재인대표의 문안박 연대를 거부하고 사실상 조기전대를 역제안하였습니다.

관련기사 : 安, 문안박 연대 거부..'文·安 참여 혁신전대' 역제안

이에 문재인 대표는 이날 오후1시 기자간담회를 열어 문안박 연대무산을 안타깝다고 밝혔으며 안철수 의원의 혁신전대 제안에는 당내 의견을 더 들어보겠다하고 하였습니다.



다음은 노영민 의원이 정리한 조기전대 제안의 6가지 문제입니다.


o 안철수 혁신 전대(사실상 조기 전대) 6가지 문제

1) 조기 전당대회 주장은 국민과 당원에 의해 선출된 2.8 전당대회의 결과와 당중진 및 의원총회 당무위원회 연석회의의 재신임에 불복하는 것이다.

2) 문재인대표는 통합하고 단합하자고 하는데, 안철수 의원은 싸우자고 하는 격
- 문안박 연대는 당을 단합하자는 것인데, 총선을 코앞에둔 지금의 전대는 사실상 당내 권력투쟁을 하자는 것

3) 지금 시기 전대 개최는 공천 줄 세우기에 다름 아니다.
- 전대 승리를 위해선 의원, 지역위원장에 대한 줄 세우기 극심할 것임, 혁신 전대라는 것은 허울이고, 사실상 줄 세우기 하자는 것임
- 전대 결과에 따라 나눠먹기로 흐를 가능성 농후

4) 전대는 사실상 이전투구, 이판사판, 사생결단 전당대회가 될 것이다.
- 총선을 앞둔 전당대회는 all or nothing 게임이 될 것이며, 당내 단합과 혁신과는 상관없는 분열을 자초하는 전대가 될 것임
- 경쟁에서 진 쪽은 어떻게 할 것인가? 죽기 살기로 하는 전대는 총선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5) 일정상 불가능한 스케줄이다.
- 통상 전당대회 개최는 1.5개월 소요(합의 추대의 경우)
- 1월 중순 전대가 끝나면 총선 준비할 물리적 시간적 여유가 없음(인재영입, 정책개발 등)
- 아울러, 단일/집단 지도체제 및 경선 룰 합의 등을 고려하면 도저히 제 시간을 맞출 수 없는 일정임.
전대준비와 전대이후의 총선준비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무슨 혁신인가?

6)이미 의원 평가작업에 돌입한 혁신위의 혁신안을 백지화하는 것은 당의 총의에 반하는 것이다.




한편 이날 오전 문재인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시도지사 정책협의회에서 박원순 시장과 손을 잡고 있다.
출처 : 뉴시스

2015년 11월 28일 토요일

영하5도 추위에 방치된 YS영결식장의 구리시 어린이 합창단

2015년 11월 27일 유나의 트윗톡톡 “어린이 보호가 뭔지도 모르는 박근혜 정부”

‘국제 연합 아동 권리 선언’이란 1959년에 11월 20일 국제 연합 제14차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어진 ‘아동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정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1991년에 국제 연합 총회에서 정한 ‘아동 권리에 관한 국제 연합 협약’을 채택한 바 있습니다.

열 가지 원칙이 있는데 그 중 원칙 8은 다음과 같습니다.

원칙8
아동은 모든 상황 속에서 가장 먼저 보호와 구조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11월 26일 고 김영삼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린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는 식이 진행되는 1시간 30분 동안 얇은 옷을 입은 구리시립 소년소녀 합창단원들이 추위에 떨었다고 합니다. 노컷뉴스가 단독으로 보도했습니다.

자료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WDdYvKPK0js

이 날 서울은 체감온도가 영하 5도까지 떨어지는 매서운 날씨였는데 어른들은 두꺼운 방한 옷에 무릎 담요까지 덮고 추위를 피했지만 얇은 단복을 입은 어린이들은 입술이 파래지도록 추위에 떨었습니다.

부모들이 주최 측의 허락을 받고 담요를 챙겨주었지만 담요 한 장으로는 추위를 막기 어려웠습니다.

이 날 영결식에 박근혜 대통령은 감기 증세가 있기 때문에 장기간 외부 노출을 자제하라는 주치의의 경고를 수용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출처: 한겨레신문

SNS에서는 어린이를 보호하지 않는 어른들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참 나쁜 어른들입니다. 날씨가 추워서 영결식에 못 온 분도 있는데, 아이들은 눈보라와 추위 속에 가만히 있으라고, 방치해도 되는 겁니까?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고" 박근혜는 감기 걸리면 안 되고 참 나쁜 정권"

-결코 고인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을 겁니다. 도대체 왜들 그러시나요?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해 얻는것이 무엇들이신지 ...

-장례위원장이 황교안이었습니다.이 합창단을 초대한 것도 장례위원이었지요. 국무총리가 이 아이들이 얼어 죽든 말든 상관 없었다는 것에 화가나고 이렇게 추워서 벌벌 떨면서도 단 한명도 춥다는 항의를 못했다니 세월호 아이들과 뭐가 다를까 싶네요.

-딸아이가 영상을 같이 보더니 도대체 무얼 하는데 저렇게 아이들만 춥게 두느냐고 묻네요...우리나라냐고.. 발동동 구르는 아이들이 안쓰럽고 걱정입니다

-담당자가 누굴까요? 어린이들이 오리털 점퍼를 걸치면 안됩니까? 고인이 과연 이 소식을 알면 좋아할까요? 어리석고 오만한 짓입니다. 저 아이들 부모들도 속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권위주의 사회에서는 시키는 것만 합니다. 그래야 책임질 일이 생기지 않을테니까요. 행사 진행하는 사람은 일관성을 추구했을테고, 인솔자는 아이들에게 옷을 더 입히자고 말하지 않고, 아이들은 추워도 서로 눈치보며 '가만히' 있는거죠

-이 나라 정부는 돈안되고 이익없는거엔 아예 관심이 없는것 같네요  아이들은 당장의 이익이 안되니 무시하는것처럼 보여요

-대통령은 춥다고 YS 국가장 영결식 참석도 안해놓고 어린이들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렇게 고생시킨 건가요?

-왜 영결식에 어린이합창단이 동원되어야했을까? 그것도 구리시.

-백퍼 아동학대임. 어른들은 꽁꽁 싸매고 애들이 무슨 죄로 저리 추위에 덜덜 떨게하냔 말이다.

-누구는 감기 때문에 못왔다는데, 아이들을 이리 방치하다뇨. 참 ‘못난’ ‘나쁜’ 어른들입니다.

-영결식도 좋지만, 이렇게 추운 날씨에, 어린합창단을 이렇게 앉아있게 하는건 아니라고 봄. 핫팩에 패딩을 하나씩 입어도 추울텐데.. 미안하다

한편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는 27일 밤 10시 30분에 트위터를 통해 어린이 합창단에게 사과했습니다.


아버님 영결식에 나온 어린이 합창단들이 갑자기 몰아닥친 영하의 추운 날씨에 떨었다는 소식에 유가족의 한사람으로서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세심한 배려가 부족한 결과가 어린 학생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출처: @hckim308



 출처: 노컷뉴스 영상 갈무리 화면

2015년 11월 27일 금요일

박근혜 대통령 7분 김영삼 대통령 발인식 참석, 그리고 영결식 불참

2015년 11월 26일 유나톡톡 184 “박근혜 대통령의 김영삼 대통령 발인식 부분 참석은 6분? 8분?”

서울에 올 겨울 첫 눈이 내린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엄수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 영결식은 만 명을 예상하고 자리를 준비했지만 3천 명 정도만 참석해 썰렁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도 있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았기에 참석이 저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오마이뉴스

뭉텅뭉텅 빈자리... 너무나 썰렁했던 YS 영결식

박 대통령은 영결식이 열린 국회의사당에 나타나지 않고 서울대병원에서 진행된 발인식에만 참석했습니다. 대통령이 고열 등 감기 증세가 있고 곧 해외순방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장기간 외부공기에 노출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는 주치의의 권고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국장과 국민장이 통합된 국가장으로 전직 국가원수에 대한 장례식이 치러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의 장례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영결식은 오후 2시부터 한 시간 20분간 진행되었습니다. 주치의는 80분을 ‘장기간’이라고 했습니다.

청와대 페이스북에는 26일 오후 5시에 박 대통령의 발인식 참석 내용이 올라왔습니다.
오늘 故 김영삼 前 대통령의 영결식이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빈소를 찾아 운구하는 모습을 지켜본 후 유가족들을 위로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출처: 청와대 페이스북

페이스북에는 모두 5장의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시간 순으로 다시 정리해서 5장을 올려봅니다.

사진1



사진2


사진3


사진4





사진5



위 사진 5장은 몇 분간 있었던 일일까요? 장기간 외부공기에 노출하는 것은 자제해야하는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위해 배려한 시간은 얼마나 되었을까요?


연합뉴스 보도는 박 대통령이 발인식에 8분간 참석했다고 합니다.


'고열로 야외활동 자제' 주치의 권고에도 빈소 찾아 마지막 길 8분간 배웅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김 전 대통령 시신을 모신 관과 영정이 운구차에 실려 국회의사당으로 출발하는 모습을 8분간 지켜보면서 애도를 표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6분이라고 전합니다.


박 대통령, 영결식 일부만 참석…현직 대통령으론 처음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1시 7분 서울대병원을 찾아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이 영구차에 실려 국회로 출발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박 대통령은 1시 13분 자리를 뜨기까지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와 예우의 뜻을 표했다.

조선일보 보도에서 특이할 만한 부분이 있는데 기사 제목에서 ‘대통령이 영결식 일부만 참석했다’고 한 점입니다. 하지만 본문 내용은 다릅니다. 제목만 영결식 일부 참석이라고 한겁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다시 방문해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다만 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진행되는 공식 국가장 영결식에는 건강 문제로 불참했다.

기사의 정확한 제목은 ‘영결식 불참, 발인식 참석’입니다.

TV조선에서는 박대통령이 7분간 머물렀다고 합니다.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1/26/2015112690169.html

박 대통령, YS 영결식 불참…운구차 출발 배웅

빈소 밖에서 7분여간 머물며 영구차 출발 뒤에도 김 전 대통령의 유족들을 위로했습니다

고 김영삼 대통령의 영결식은 박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아 황교안 국무총리가 제일 상석에 자리한 채 거행되었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처음으로 불참한 전직 대통령의 영결식, 그리고 적은 수의 추모객들.

고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의 통곡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출처: 오마이뉴스

87세의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아들의 눈물이라고 보기엔 너무 서러워 보입니다. 차가워진 날씨로 영결식에 참여한 사람의 숫자가 적어서일까요? 아니면 영결식에는 참석하지 않으면서 비난은 면하기 위해 잠시 발인식에 나타난 대통령의 처사에 대한 울분일까요?

김현철 씨가 눈물의 의미를 설명할 시간이 올 것이라 봅니다.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자식의 슬픔을 참담하게 밟아버린 대통령, 전직 대통령이었던 아버지의 마지막을 초라하게 보내야 하는 아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출처: 오마이뉴스

2015년 11월 26일 목요일

새정치민주연합, 당명 개정 지금도 늦지 않았다.

2015년 11월 26일 유나의 트윗톡톡 당명 개정 지금도 늦지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길고 부르기 힘든 이름이 조만간 바뀔 거 같습니다. 25일 당명 개정을 위한 여론조사가 새정치민주연합 전국 대의원을 상대로 이루어졌습니다전국 대의원 수는 2015년 1월 기준 13,626명입니다.


출처새정치민주연합 손혜원 위원장의 페이스북



새정치민주연합은 작년 3월 민주당이 안철수 전 대표와 합치면서 만들어진 이름입니다당 이름에 대한 불만이 많았지만 안철수 전 대표의 반대가 심해 당 이름 바꾸기가 쉽지 않았습니다하지만 대의원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반대가 많다면 바로 당명 개정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합니다당원 뿐 아니라 국민 대부분에게 길고 어렵고 복잡했던 이름이 쉽고 짧고 간단하게 바뀌기를 바랍니다.

출처: Jtbc 갈무리화면

당명을 바꾸는 이유는 내년 총선에서 국민에게 더 좋은 이미지로 다가가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지금 당명을 바꾸는 것에 대해 시기가 촉박하다새 당명을 알리기에 시간이 부족하다고 반대할 수 있는데 2012년 한나라당이 당명을 바꾼 과정을 알아보았습니다.

2012년 4·11총선을 2개월 반 앞두고 한나라당은 당 간판으로는 도저히 극복이 안 될 만큼 이미지가 망가진 상태였습니다. 2011년에 있었던 4·27 재보궐 선거 참패, 8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연패 후 당명 변경 요구가 거세졌지만 영남권의 반발로 미루지다가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 사건과 고승덕 의원의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파문으로 당명 개정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당시 야당 뿐 아니라 월스트리트저널에서도 스캔들로 얼룩진 여당이 이미지를 바꾸려고 당명개정을 한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하지만 총선을 겨우 두달 반 남겨둔 상황에서 15년이나 지켜왔던 한나라당이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고친 것은 19대 총선에서 결과적으로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출처연합뉴스

2012년 설(1월 23연휴 직전 당 소속 국회의원 및 원외 당협위원장에게 당명 개정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물었습니다여론조사 결과 당명 찬성이 50%, 반대가 38%나와서 당명 개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1월 26일 비상대책위원회의 전체회의에서 당명을 개정하기로 결정합니다.

1월 27~29일 3일간 전 국민을 상대로 한 당명공모를 실시합니다.
총 9211건이 접수되었습니다. (홈페이지 응모 6362이메일 응모 2849)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을 비롯한 실무진들이 일차적으로 5~6개로 당명 후보를 압축합니다.

(30일에 당명 정하기로 했는데 응모가 많아 연기됨)

2월 2일 비상대책위원회의 전체회의에서 공모된 당명 중 최종으로 올라온 새희망한국당’, ‘한국민당’, ‘새누리당’ 셋 중에서 새누리당으로 정합니다새누리당으로 제안한 사람은 모두 10명이었습니다.

2월 7일 새누리당 새 로고를 결정했습니다.

2월 9일 상임전국위원회, 13일 전국위원회를 거쳐 당명을 최종 의결합니다.

2월 13일 새누리당은 중앙선관위에 정당 등록이 아닌 당명변경 신청을 했습니다.


 출노컷뉴스

새누리당은 당명을 바꾸는 데는 22일이 걸렸고 당명이 확정되고 두 달 뒤에 총선을 치루었습니다새정치민주엽합은 11월 25일 대의원 여론조사를 실시했습니다서두른다면 2016년 새해를 새 당명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참고로 현재 우리나라에는 17개의 정당이 선관위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새누리당새정치민주연합정의당겨레자유평화통일당경제민주당고용복지연금선진화연대공화당국제녹색당그린불교연합당기독민주당노동당녹색당대한민국당민주당새마을당새정치국민당한나라당입니다.

따라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새로운 당명을 정할 때는 위 17개의 당명과 다르게 해야 합니다.

2015년 11월 23일 월요일

김영삼과 노무현의 인연, 그리고 남겨진 숙제

2015년 11월 22일 유나의 트윗톡톡 “YS와 노무현

여보나 좀 도와줘
이 책은 1994년에 출판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2014년 10월부터 노무현사료연구센터는 노무현사료관을 통해 이 책의 PDF파일을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보나 좀 도와줘” 표지(왼쪽)와 대선후보 시절 한 중학교 교사의 요청으로 학생들에게 써준 친필(사진제공=노무현사료연구센터)

이 책에는 22일 고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신 김영삼 대통령에 얽힌 인연과 3당 합당 등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책 속에 실린 글 몇 부분만을 옮겨오려고 합니다나머지 글이 궁금하신 분은 위 주소에서 전문을 다운 받으시기 바랍니다.


1. 영원한 보스

89년 의원직 사퇴를 했을 당시의 일이다당시 나는 1년 남짓한 정치판에서의 생활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한 채 혼돈의 와중에서 방황을 거듭하고 있었다.
여당의 일방적인 불참으로 파국을 맞이했던 청문회기대했던 것만큼 쉽게 풀려 나가지 않은 야권 통합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청년들과 했던 굳은 약속들그리고 박해받는 현장에서 항상 제3자로 남아 있어야 했던 국회의원이라는 신분그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압박하기 시작했고 나는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의원직 사퇴서를 던지고 말았다.
(중략)

그리고는 침묵이 흘렀다. YS는 한참 동안을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듯했다. 2분 여가 지났을까, YS는 마침내 정색을 하더니 다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본론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나는 이 자리에서 사퇴를 번복하지 않으면 저 문으로 돌아 나가는 일도 쉽지도 않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한편으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설득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방어 태세를 가다듬었다.
노 의원그래 얼마나 마음이 아픈가내 노 의원 마음 다 안다충분히 이해하고 말고우리 정치판이 너무 험해서 그렇지노 의원처럼 깨끗한 사람이 버텨 나갈 곳이 못되는 것 같아그렇게 순수한 사람들이 소신껏 일을 할 수 있는 정치가 되어야 할 텐데 말이야.”
뜻밖이었다그러나 그 다음의 말은 더 뜻밖이었다.
어디 가서 좀 더 쉬게나낚시라도 하면서⋯⋯.”
YS의 말은 그게 전부였다사퇴 철회는커녕 사퇴의 자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게다가 때 아닌 낚시 비용으로 2백만 원이 든 돈 봉투를 직접 내 손에 쥐어 주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왜 사퇴서 얘기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는 것일까이 돈 봉투는 받아도 되는 것일까온갖 의문들과 당혹감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으면서 맴돌고 있었다.
그러나 이유는 간단했다그는 부하를 다스리는 데는 도가 통한 사람이었다.

2. ‘침묵으로 말하는 정치9’ 중에서

부산에서 학교를 다닐 무렵, YS는 나를 포함한 내 또래의 친구들에게 매우 특별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20대에 국회의원이 된 사람단순한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 무슨 전설이나 신화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이었다.
그 후 조금 더 세상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그런 이미지도 현실적인 것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불의한 독재와 맞서 싸우는 우리의 투사가 된 것이다그런 이미지 속에는 월드컵 축구에 참가한 우리 선수들을 향해 열심히 박수를 치는 국민들의 심정과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아무튼 YS는 그 무렵 김빵삼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면서 많은 부산 사람들로부터 큰 호감을 얻고 있었다그런 부산 사람들의 정서로 말하면 나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79년의 일로 기억되는데친구의 권유로 팔각회라는 모임에 나간 적이 있었다. YS의 민주 제단에 피를 뿌리겠다.’는 발언이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면서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을 때였다.
그 모임에서 경찰서 정보과장이라는 사람을 강사로 초빙하여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그 사람은 무슨 민방위 훈련이나 예비군 훈련을 하기라도 하듯이 한참 동안 남침 위기에 대해 지루하게 이야기를 늘어놓더니, “이런 시기에 민주 제단에 피를 뿌리겠다는이런 과격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어디에 피를 뿌리겠다는 겁니까이런 철부지가 정치 지도자가 되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하면서 느닷없이 YS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나는 울화가 치밀어 당장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지만 친구의 얼굴을 보아서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그 대신 두 번 다시 그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나의 영웅’, 아니 우리의 영웅인 YS가 매도당하는 것만큼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영웅에 대한 열렬한 호감과 존경심은 한 순간에 와르르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87년의 양 김 분열이 거의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3. 빌린 머리와 돈 봉투

그럼에도 나는 그를 지도자로 부르는데 아직 동의를 할 수 없다그로 말미암아 청산해야 할 이 땅의 기회주의가 다시 때를 만났기 때문이다역사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즉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이다.
YS가 3당 합당으로 권력을 잡기 전만 해도 이 땅에서는 기회주의자들이 차지할 수 있는 장물의 수준은 한정되어 있었다고작해야 권력에 빌붙어 먹고사는 정도의 수준에 불과했다그러나 YS의 대권 장악과 함께 기회주의자들의 입지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겨났다기회주의자들의 성공이 최고 권력의 차원으로까지 올라갔기 때문이다그런 의미에서 YS의 대권 장악은 기회주의자들에게는 하나의 신선한 모델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4. 45의 트로이 목마

어쨌든 나와 YS는 갈라섰다그 이후 나는 변함없이 YS를 변절자라고 비난하고 다녔다그러고도 모자라서 “YS가 민자당 후보가 되면 내 손바닥에 장을 지지겠다.”고 막말도 했다그 말은 내 나름대로 상식과 과학적인 추리를 거쳐 얻은 결론이지만배가 아파서 했던 말인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그는 끝내 대통령이 되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거나트로이의 목마라는 이야기도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호랑이 잡겠다고 큰소리 쳐 놓고는오히려 호랑이의 양자가 되어 호랑이 굴을 상속받아 여전히 동네의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이다.


5. 또 하나의 시작(1988년 초선이 된 뒤 4년 뒤 이야기)

처음부터 안되는 선거였다내 주변에 있는 사람 모두 부산 출마를 말렸다그러나 김정길 의원과 나는그래도 부산을 떠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우리 당의 간부들은 야당 복원’ ‘통합 야당을 외치며 우리의 등을 떠밀었다.
선거를 치르기 위해 부산에 내려온 나는 정말로 눈앞이 깜깜했다. 3당 합당 덕분에 중진 아닌 중진이 되어 야권 통합이나 하면서 중앙 정치를 한답시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지난 4년 동안 지역을 거의 돌보지 못한 탓에지역구는 황폐해 있었다그렇게 들뜬 분위기의 한가운데로 김대중 씨가 대표로 있는 당의 대변인이 뛰어들어 선거를 치르겠다고 했으니⋯⋯표가 보일 리가 없었다하지만 어쩌랴이 마당까지 와서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그런데 정치는 마약과도 같다고 하더니막상 선거전이 시작되면서 뜻밖에도 분위기가 달라지는 듯했다유권자들이 무척이나 반가워해주는 것을 보고잘하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기분도 들었다은근히 용기도 생기고 욕심도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유권자들이 나를 반겨 준 것은 나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단지 내가 유명인이기 때문이었다지역 개발을 하라고 국회의원을 뽑는 것이 아니며 또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국회의원이 지역 개발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열심히 지역개발론을 공격했으나허삼수 씨가 그 동안 골목골목을 누비며 엮어 놓은 끈끈한 관계를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낙선의 근본적인 원인은 노무현이를 밀어주면 DJ가 대통령 된다. YS를 대통령으로 만들려면 미워도 허삼수를 찍어야 한다이번엔 후보 보고 찍는 게 아니다.’라는 부산 사람들의 의식에 있었다사실 그 한마디로 선거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선거는 YS가 좌천동 증산 공원에 들러 허삼수 씨의 손을 번쩍 드는 것으로 이미 끝나 버린 것이다.



출처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