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31일 일요일

문재인 탐구생활 31화 – 문재인의 아픈 손가락, 양향자

문재인 탐구생활 31화 – 문재인의 아픈 손가락양향자


[이번 에피소드도 팟빵으로 들으시면서 원고를 보면 더 좋습니다]

양향자의 영입 그 후 문재인은?



문재인 대표의 인재 영입은 보수 진보 진영 모두가 높이 평가하는 부분입니다하지만 영입된 인재 모두가 국회의원이 된 것은 아닙니다특히나 광주 서구을 지역에 출마한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의 실패는 문재인 대표에게 가장 아픈 손가락이 되었을 것입니다.

양향자 상무가 총선이 끝난 후인 5월 초양산에 있는 문재인 대표 댁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문재인대표 양산댁 방문 이야기는 팟빵으로 청취가능합니다]

문재인 전 대표가 총선을 위해 인재 영입을 하고 그 뒤는 어떻게 하나 궁금해 하는 분들에게 답이 되었으리라 봅니다.

양 상무에게 문재인 전 대표는 선생님이자 멘토이자 앞길을 이끌어주시는 분입니다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 여성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 한다는 소식을 듣고 박사과정 공부 중인 학교로 찾아왔다고 합니다.

[문재인 대표와 만난 이야기는 팟빵으로 청취가능합니다]

총선에 실패한 것에 대해 마음 아파하는 문재인 전 대표에게 양향자 상무는 “30년 정치의 길을 보고 왔는데 아픔과 어려움과 기쁨이 있을 것인데 그럴 때마다 함께 해주시는 것으로 힘이 납니다.“라고 담담히 말합니다.

하지만 광주 현지에서는 양향자 상무가 지도부에 입성하는데 문재인 대표가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인터뷰부분=팟빵]

문재인의 열 손가락 중 어쩌면 가장 아픈 손가락인 양향자 광주 서구을 지역위원장은 최근 더불어민주당 여성위원장 후보 경선에 나섰습니다.

문 대표는 양향자 상무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다고 합니다.

쉬운 길과 어려운 길 간의 선택에서 가능한 한 어려운 길을 선택한다면 당에도 도움이 되고 정치인 양향자도 더 커질 것입니다.”

문재인과 함께 가는 길은 어렵고 힘든 길이네요. ‘문키즈가 아닌 혁신의 동반자인 양향자를 비롯한 문재인 영입인사 모두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출처
1) 다음카페 젠틀재인
‘22일 전북대학교에서 진행중인 더불어민주당 더불어콘서트 사진 몇장
2) 천지일보 2016517, [광주] 문재인·양향자 주먹밥 드세요
3) 연합신문 201649, <총선> 포옹하는 문재인-양향자





2016년 7월 30일 토요일

문재인 탐구생활 30화 – 양향자 영입의 비결

문재인 탐구생활 30화 – 양향자 더민주 영입스토리


양향자 영입의 비결은문재인의 사슴 눈?

문재인 인재영입 7로 불리는 양향자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실 상무가 입당하면서 국민들은 문재인 대표의 능력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문재인 전 대표와 양향자 상무간의 메신저 역할을 한 이는 최재성 전 의원이라고 합니다최 의원은 구글에서 호남인재’ 키워드로 양향자라는 이름을 찾았고 삼성전자 대표전화 교환원을 통해 양 상무와 연결이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 비서가 연락이 왔다고 했을 때 양향자 상무는 정치후원금을 요구하는 줄 알고 후원금 10만원을 보냈는데 다음날그 다음날도 영입 제의가 왔다고 합니다양 상무가 호남 출신의 여성이라는 배경을 극복하고 삼성전자라는 대기업의 임원이 되기까지의 인생 드라마는 정치계에서 탐낼만한 것입니다하지만 양향자 상무가 정치에 뛰어든다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자 모험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죠.

양향자 상무는 자신이 영입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양향자 위원장의 인터뷰는 팟빵으로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표와 여러 번 만난 양 상무가 정치의 길을 가기로 한 후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문재인 대표가 직접 나서야했습니다.

[양향자 위원장의 인터뷰 부분]

문재인 대표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양 상무의 남편 최용배 씨는 신뢰를 가지게 되었고 아내의 정치 활동에 찬성하게 되었습니다문재인 대표는 만남의 시간의 길이가 신뢰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문재인 인재 영입이 연일 화제가 되면서 항간에서 문재인 대표의 영입 비결이 커다란 눈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돌았습니다양향자 상무도 그랬을까요?

[양향자 위원장의 인터뷰 부분]

양향자 상무 뿐만 아니라 표창원 의원과 조응천 의원도 문재인 대표의 눈을 보고 설득 당했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인재 영입이 한창일 때 문재인의 눈을 보면 설득 당한다는 말이 돌 정도였습니다.

양향자 상무의 아버지와 문재인 대표의 눈이 닮았고 양 상무의 남편과 문 대표의 외모가 비슷한 점 말고도 두 사람을 이어주는 운명 같은 우연이 또 있습니다.

[양향자 위원장의 인터뷰 부분]

문재인 대표와 닮았다는 양 상무의 남편 모습은 네이버 블로그 유나톡톡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 1월 양향자 상무의 입당 기자회견문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나처럼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출신이 어디이든학벌이 어떠하든오늘 열심히 살면 정당한 대가와 성공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없는 길을 만들며 무수히 눈물을 삼켰던 주인공이 제가 마지막이 되기를 바랍니다.

양향자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은 인재 영입을 이끌었던 문재인 대표가 바라는 세상과 같은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양향자 인재 영입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https://youtu.be/jdIp7MSm2Qo  4:29-6:13 부분





출처
1) 문재인 국회의원 블로그 [문재인 인재영입양향자 삼성전자 상무
2) 중앙일보 2016년 5월 28, [특별 인터뷰] 20대 총선 낙선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
3) 양향자 삼성전자 상무 영입 기자회견 https://youtu.be/jdIp7MSm2Qo




2016년 7월 29일 금요일

문재인 탐구생활 29화 - 문재인이 잊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

문재인 탐구생활 29화 문재인이 잊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


밀양 삼랑진에 계시는 송기인 신부님은 파워 블로거 거다란님과의 인터뷰에서 문대표가 어머니에 대해서 아픔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송기인 신부님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인터뷰 내용은 팟빵으로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송기인 신부님이 문재인 어머니를 미스강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는 28화에서 전해드린바 있습니다. 그리고 암표를 사기 위해 어린 아들과 같이 갔다가 차마 사지 못하고 돌아선 어머니 이야기는 문재인 탐구생활’ 3화에서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http://yunatalktalk.net/220744581945 문재인과 어머니 이야기)

이런 어머니를 생각할 때 문재인 전 대표가 가장 잊지 못할 장면은 어떤 것일까요? 2012년에 방송된 SBS힐링캠프 25회에서 대학생 문재인이 유신반대 시위를 주동해 구속된 후 구치소에서 검찰로 이송되는 날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방송 내용 일부를 들려드립니다.

3:38 - 6:13


'문재인이 드립니다에도 이 날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는 사방이 꽉 막힌 호송차 안에서 100원짜리 동전만한 작은 구멍을 발견했습니다. 바깥 풍경이 궁금해 무심코 그 구멍에 눈을 갖다 댄 순간 손을 흔들며 차 뒤를 따라 달려오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들의 이름을 애 타게 부르며 손을 흔드시던 어머니. 하지만 호송차는 금세 어머니에게서 멀어져 버렸습니다. 그 짧은 순간 제가 본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어머니의 손이었습니다. 모진 고생을 견딘 어머니가 그 가녀린 손을 흔들 때 마음이 찢어졌습니다.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 손이 먼저 떠오릅니다. 정치를 시작하고부터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손을 잡지만, 정작 어머니의 손을 자주 잡지 못합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출처
1) Sbs 힐링캠프 25(201219)
2) 리더스북 2012, 문재인이 드립니다. 109
3) 다음 TV[힐링캠프] 문재인, 감옥 가다





2016년 7월 28일 목요일

문재인 탐구생활 28화 - 송기인 신부님과 문재인 어머니, 미스 강

문재인 탐구생활 28화 송기인 신부님이 말하는 문재인 어머니미스 강


송기인 신부님은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에 정신적 지주라고 부른 분이시고 부산 경남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분입니다노 전 대통령에게 유스토란 세례명을 지어주셨고 1988년 13대 총선에 출마할 것을 권유한 분이기도 합니다

송기인 신부님은 2005년 사목직에서 은퇴한 후 밀양의 한적한 시골마을 삼랑진읍 용전리에 살고 계신데 파워 블로거 거다란님이 송기인 신부님 댁을 직접 방문하고 인터뷰한 후에 보내온 글을 전해드립니다.

송기인 신부는 부산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분이다그런데 사람들의 입과 책에서 그렇게 많이 언급되는 분치곤 잘 보이시지 않는 편이다그 정도면 화면에서라도 한 번 뵐 법한데 어디 다녀갔다는 얘기만 너머서 들었을 뿐이다직접 만나고서야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송기인 신부는 필요한 판단과 필요한 말이 아니면 잘 안하시는 분이었다영혼 같은 삶을 사신다는 느낌이 들었다그러니 오랜 세월 민주화의 버팀목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송기인 신부가 문재인 어머니에 대해 얘기할 땐 미스강” 이라며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었다송기인 신부는 문재인 어머니강한옥 여사를 영도 신선성당 재임 중에 알게 되었다고 한다.

[송기인 신부님 인터뷰 내용은 위 팟빵으로 청취할 수 있습니다.]

송기인 신부가 말하는 문재인의 어머니의 모습에서 문재인을 어렵지 않게 떠올린다항상 단정하게 차려입으신 어머니를 투영하면 문재인의 모습도 비슷하게 그려질 것이다.


문재인의 책 그 남자문재인’ 에도 송기인 신부님은 문재인의 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4년간 일했던 영도의 신선성당 터줏대감 할머니가 문 변호사의 모친인데성당 사목위원회 부회장일 뿐 아니라 포교의 전위병 격인 구역장까지 맡고 있었다해마다 사순절이면 신도들의 가정을 둘러보게 되는데 그분의 구역을 가면 어떻게나 준비가 잘 되었는지 참으로 흡족했다.

예컨대 이동하는 중에 다음에 만나게 될 가정에 대해서 간결하고 요령 있게 설명해주어서 그 짧은 시간에 평소에 공부를 했던 것처럼 분석된 내용을 갖고 상대를 마주하게 되었다또 몸가짐도 매우 단정하게 차려 입어서 미스강이라는 별명을 주었는데 팔순의 노모가 지금도 전화통화를 하거나 하면 스스로를 미스 강입니다라고 말한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일까문 변호사의 언어를 보면 매우 간결하다그가 청와대에서 일할 적에 불행하게 타계한 어느 시장의 문상에서 어떻게 이 지경이 되도록 했느냐는 상주의 원망에 저희 힘이 미치질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을 지켜보며 알맹이만 말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밀양 송기인 신부님 댁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여러 회로 나누어서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원고 = 거다란
인터뷰어=김정호,거다란
인터뷰는 삼랑진 송기인신부님 댁에서 진행하였습니다




출처
1) 중앙일보 2011년 5월 23노무현의 정신적 지주’ 송기인 신부
2) 리얼텍스트 2012년 발행 그남자 문재인
3) 오마이뉴스 2014년 1월 4, <변호인처음 본 문재인 "감동했다"
4) 뉴시스 2007년 3월 7, ‘노무현대통령과 송기인 신부
5) 연합뉴스 2012년 12월 19, <투표현장문재인 후보 모친도 한 표


 * 송기인신부님

* 영도 신선성당

 *노무현대통령과 송기인신부

* 송기인신부님

 * 송기인신부님과 문재인대표

 * 노무현대통령과 송기인신부

 * 강한옥 여사

* 어머님이 투표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문재인 

2016년 7월 27일 수요일

문재인 탐구생활 27화 - 문재인과 상담의 추억

문재인 탐구생활 27화 문재인과 상담의 추억

 


동료 변호사법률사무소 직원이 본 문재인 변호사에 이어 오늘은 소설가 정광모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소설가 정광모 씨는 2010년 <어서 오십시오음치입니다>로 한국소설 신인상을, <작화증 사내>로 2013년 부산 작가상을 수상했습니다최근에는 장편소설 <토스쿠>를 출간했습니다.


문재인 변호사가 손가락 두 개를 잘린 남자에게 말했다.
"산재처리가 됩니다바로 조치합시다. "
남자의 입술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실룩거렸다굳은 얼굴이 펴지면서 미소가 번졌다.

나는 1988년 노동문제연구소에서 간사로 일했다노동문제연구소는 1988년에 부산의 인권변호사인 노무현문재인조성래조우래가 설립했다사무실이 지금의 서면 밀리오레 건너편 전포동 창원빌딩에 있었다자동차 부품업체와 공구 상가가 몰린 지역이다.

1987년 노태우가 대통령 직선제를 발표한 6. 29 선언 이후로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 시위와 노동쟁의가 터져 나왔다. 1987년 곳곳에서 노동조합이 설립되고 눌렸던 노동문제가 쏟아졌다.

노동문제연구소는 노동법률 상담과 업무 지원을 했다부산에서 노동문제를 상담하고 지원하는 곳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노무현 변호사는 많은 일을 하겠노라 의욕적으로 노동문제연구소를 열었는데, 1988년 부산 동구에서 1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여의도로 올라갔다그래서 문재인 변호사가 매주 날짜를 정해 전포동 사무실로 와서 노동법률 상담을 했다.
노동문제연구소에서 일했던 직원들도 법률 상담에 응했는데 오시는 분들은 아무래도 직원보다는 변호사 상담을 더 든든하게 여겼다부산 사상의 국제상사를 비롯한 신발공장 노동자들도 사무실을 많이 찾았다. 1988년에 일반인이 변호사 사무소가 아닌 곳에서 직접 변호사를 만나 무료 상담을 받을 곳은 없었다.
변호사란 높은 문턱을 몇 개 거쳐야 만날 수 있는 분이었다더구나 변호사에게 시간은 돈이다.

나는 문재인 변호사가 상담을 하는 날전화로 상담예약을 했거나 당일 찾아온 사람들을 안내했다.

사람들은 작업을 마치고 급하게 달려왔다공장의 화학약품과 기름 냄새가 함께 묻어왔다그들은 회사 사장을 만나는 것처럼 작업복을 여미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머리를 다듬었다.

문 변호사는 친절하게 상담 내용을 들었다산업재해와 임금 체불이 많았다그 자리에서 해결되는 사건도 있었지만 며칠 노동부를 쫓아다니거나 재판을 걸어서 마무리를 짓기도 했다.

상담 온 노동자들은 조리 있게 얘기를 풀어내지 못했다주눅이 들어 말을 입 속에서 웅얼거리기도 했다그들은 처음 만난사회적 지위가 높아 보이는 변호사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문 변호사는 충분히 듣고 요점을 짚어서 다시 들려주었다.

"당신이 처한 문제는 이러저러한 것인데 맞습니까? "

그리고 하나씩 해결책을 찾아나갔다사람들은 문 변호사의 소탈하고 편안한 모습에 마음을 놓고 말문을 열었다가슴에 고였던 묵직한 짐을 내려놓았다어떤 여성 노동자는 치미는 울음에 한참을 흐느꼈다답답하고 풀리지 않는 삶이 힘겨웠으리라문 변호사는 어깨를 들썩이는 그분 옆을 묵묵히 지켜주었다.

사무실은 습하고 더웠다사무실 아래층에 있던 창원사우나가 사우나를 돌리고 남은 열기를 사무실로 올려 보냈다연구소를 연 기념으로 선물 받은 화초들이 후덥지근한 열기에 말라죽어갔다.

문 변호사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오래도록 귀를 기울이고 냉철하게 상담 내용에 맞는 답을 내줬다그렇게 도시의 속살을 다정하게 나누었던 인연은 사람과 사람의 바닥을 엮었다.

그 때 상담 받은 그 분들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벌써 24년이 흘렀다지금 40대와 50대가 된 그 분들은 어디에서 힘찬 삶을 이어가고 있을까?



출처
1) 부산일보 2015년 11월 9숲 전체를 보는 '드론같은 책

2) 문학과 음악이 함께한 수요일 밤 정광모 장편소설 토스쿠
http://sanzinibook.tistory.com/1783

3) 국회의원 문재인 네이버 블로그 [내가 만난 문재인 문재인과 상담의 추억 http://blog.naver.com/moonjaein2/20168226779






   소설가 정광모

*소설가 정광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