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6일 수요일

문재인 탐구생활 10화 – 문재인과 북악산 전면개방 이야기

문재인 탐구생활 10화 – 문재인과 북악산 전면개방 이야기


책임감성실함업무 추진력으로 북악산 개방을 이루어낸 문재인


2012년 12월 5,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텔레비전을 통해 문재인 후보 찬조 연설을 한 적이 있습니다지금은 신분증만 들면 누구나 북악산을 오를 수 있지만 2007년 이전까지는 일반인에게 금지된 지역이었던 북악산이 개방된 데에 문재인 당시 청와대 비서실 민정수석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찬조연설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미리 설명을 드리자면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어 처음 지시한 것이 북악산 개방이었지만 관계 부처의 반대로 미루어지다가 2006년 2월에 일부 구간을 시범 개방하였고 2007년 45일 이 되어서야 서울성곽 전면 개방이 이루어졌습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목소리로 북악산 개방에 관한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2004년 10월 어느 날의 일입니다그날 가을 하늘은 유난히 높고 맑았습니다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저에게 일요일 날산림청장하고 북악산을 등반하자고 하셨습니다당시 북악산은 일반 시민들은 전혀 오를 수 없는 폐쇄지역이었습니다.

1968년 1.21사태 아시지요북한 게릴라 부대가 청와대를 목표로 침투해 온 사건입니다북악산은 이때부터 일반시민의 출입이 완전히 폐쇄됐습니다북악산 정상에 올라서자 노대통령께서 관악산까지 드넓게 펼쳐지는 풍광을 보면서 제게 북악산을 더 이상 대통령이 독차지하지 말고 이제는 국민에게 돌려주라는 비판적인 글을 신문에 기고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저는 이 말씀을 개방을 우회적으로 지시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서울성곽 실태조사에 들어갔습니다그러자 경호실에서 놀라서 연락이 왔습니다경호실장 하는 말이 대통령께서 그 때 신문에 글을 기고하라고 하셨지언제 개방하라고 하셨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국정상황실장에게 대통령의 진의가 원고 기고냐개방이냐?” 직접 알아봐 달라고 했습니다그랬더니 돌아온 답이 원고 쓰라고 하셨다는대요” 라는 답이 왔습니다.

이런 낭패가 어디 있습니까저는 그 때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있었던 문재인 후보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경호실은 청와대 경호를 이유로 북악산 개방에 반대하고 있고국방부산림청서울시 등 정부 내 각 부처에 북악산 개방은 모두 자기 일 아니라고 손을 떼고 있었습니다문화재청장은 그저 원고나 쓰라고 하니 어찌 해야 하겠습니까?“ 했습니다철망 친 사람은 있는데 이것을 거둬들이는 사람은 없는 것이었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묵묵히 제 이야기를 다 듣고는 함께 추진해봅시다.” 그러더군요.

그리고는 경호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반대가 있으면 무조건 힘으로 그 반대를 누르는 것이 아니었죠반대하는 쪽의 의견과 절충안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그 때 제가 절충안을 냈습니다. “북악산 전체 개방하는 것보다 서울 성곽을 개방하면 그것이 곧 북악산 개방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겠느냐” 하는 거였습니다.

그 뒤 문재인 후보는 민정수석실이 주관이 돼서 관계기관협의를 시작했는데 국방부산림청심지어 한나라당이었던 서울시장과도 협의해서 북악산 개방문제를 해결해주었습니다.

이 일이 마무리된 뒤에 제가 물어봤습니다.
북악산 개방에 왜 그리 적극적이셨습니까?”했더니

우리 문화유산을 함께 보고 함께 느껴야지 그 가치가 더 높아지는 거 아니겠습니까선조들이 국민 모두에게 남긴 유산인데 이렇게 막고 있으면 안되는 것이지요. 문화재청장 항상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하더군요제가 할 말을 먼저 하는 신념과 안목이 그렇게 뚜렷했습니다.

사실 그 때 이것 말고도 민정수석의 업무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그는 모든 일을 아주 단호하게 주저 없이 추진했습니다나중에 들으니까 얼마나 과로를 했던지 민정수석시절에 문재인 후보는 이를 10개나 뽑았다 하더군요.

그 과정에서 저는 문재인 후보의 책임감성실함업무 추진능력을 보았습니다.
그 뒤 저는 문재인 후보의 인간됨과 능력을 신뢰하게 되어 이런 글을 적은 적이 있습니다.

문재인이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면 정말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재인이 그렇군요’ 하면 위로가 되었습니다.
문재인이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라고 말하면 정말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함께 일을 해보면 무한 신뢰를 보내게 되는 사람 그가 문재인 후보입니다.




출처

1) 유홍준 교수문재인 후보 지지 2차 TV찬조연설
2) [TV찬조연설 유홍준 교수우리나라 첫 문화대통령 문재인!
3) 노무현재단 홈페이지 노무현 사료관 http://archives.knowhow.or.kr/

2016년 7월 5일 화요일

문재인 탐구생활 9화 - 신사의 품격, 문재인

문재인 탐구생활 9화 - 동료 변호사가 말하는 신사의 품격 문재인


문재인 전 대표는 1982년부터 고 노무현 대통령과 부산에서 합동법률사무소를 함께 하며 20년간 부산,경남,울산 지역 노동인권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정치인 문재인 이전의 문재인 변호사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다음 소개할 글은 문재인 전 대표와 법무법인 부산에서 함께 일한 김외숙 변호사가 2012년 7월 23일에 <대한변협신문>에 기고한 부산신사의 품격이란 글의 일부분입니다당시 기고한 글에는 신사M'으로 나왔지만 이후 필자의 허락을 받아 문재인 의원 블로그에 실리면서 신사 문재인으로 실명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신사 문재인인간에 대한 예의

내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부산에 와서 변호사를 시작하게 된 건 순전히 문재인 변호사 때문이었다. 1990년대 초반부산·경남지역에서 노동인권사건은 문 변호사가 도맡고 있었다혼자 잘 먹고 잘살기 위해 고시공부를 한 건 아니라고나름대로 정의감에 충만해 있던 예비 법조인들에게 그는 훌륭한 역할 모델로 이름나 있었다.

노동변호사가 되고 싶다며 불쑥 찾아간 나를그는 흔쾌히 맞아 주었다체력이 약해 비실거리지나 않을지출산이나 육아로 업무에 지장을 주진 않을지 등등 여자라서 일시키기에 불편할까 따지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그때까지 사회경험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던 나는 문 변호사의 그런 태도가 누구에게서나 볼 수 있는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변호사를 시작하고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사람에 대해 그런 태도를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서서히 알아갔다나만 해도 변호사로서 조금 꾀가 나기 시작하자 사람을 가려 판단하고지레 선입견으로 말을 자르고유불리를 따졌다그러면서도 그것이 변호사의 제한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지혜라 여겼다.

하지만 문 변호사는 달랐다내가 보기엔 반복되는 쓸데없는 이야기순전히 억지뿐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당사자에게도 그는 그렇게밖에 못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읽을 줄 알았다그래서인지 가족들에게서도 외면당한 사람의지할 데 없는 사람절망에 빠져 죽음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그를 찾았다돈 받고 남의 일 해주는 변호사지만 그렇게 신뢰와 의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를 통해 보았다.

수년 전의 일이다우리 사무실에는 아주 질기고 질긴 사건이 하나 있었다사건이 그렇게 되는 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사건 본래의 성격이 그렇거나아니면 당사자가 독특하거나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사건이었고 당연히 문 변호사를 보고 찾아온 의뢰인이었다.
 
그녀는 도무지 청구취지에 담길 수 없는 내용을 주문했고한 가지를 설득시키고 나면 다른 요구사항을 들고 나오는 식이었다그녀의 주치의들과 법원 근처의 웬만한 법률사무소들도 이미 두 손을 든 상태였다그녀는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왔고불쑥 나타나 오랜 면담으로 업무를 중단시키고도 돌아서면 다시 할 말이 생각나는지 전화로 문 변호사와의 통화를 요구했다직원들은 그녀의 성화에 전화를 바꿔주지 않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문 변호사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문 변호사는 그 흔한 법정 갔다고 그래라는 핑계도 대지 않았다가끔 얼굴을 찌푸리며 담배를 찾을지언정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호소를 끈덕지게 듣고 있었다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스러운 상황에서조차 그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았다.
 
결국에는 문 변호사의 한결같은 태도가 세상에 모든 원통한 일을 혼자 당한 듯이 응어리진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녀뿐만 아니라 우리 사무실 식구들까지도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였다.
 
신사의 품격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데 있고 그 예의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에서 나오는 것임을 오늘도 되새긴다.










1992년과 2009문재인 변호사의 모습이 궁금하신 분들은 네이버 블로그 유나톡톡에 가셔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사진자료는 다음 카페 젠틀재인의 규리아빠님이 수집하거나 직접 찍은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출처
1) 문재인 전 의원 네이버 블로그 [내가 만난 문재인 신사의 품격

2) 대한변협신문 <지방네트워크부산 신사의 품격

3) 다음카페 젠틀재인 1992년의 문재인 변호사

4) 다음카페 젠틀재인 200912월 문재인 "변호사"

5) 네이버 블로그 문재인의 발걸음’ 2009.12.28 법무법인 부산에서 문재인 변호사님 http://blog.naver.com/gentlejaein/30176277785

2016년 7월 4일 월요일

문재인 탐구생활 8화 - 네팔 유엔직원이 만난 문재인

문재인 탐구생활 8- 네팔 유엔직원이 만난 문재인



네팔 현지 언론이 전한 소식에 따르면 문재인 전 대표는 628일 네팔 지진피해 현장에서 여러 가지 구호활동 하고 있는 여러 한국 NGO 사람들 만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유엔개발계획(UNDP) 같은 국제기구에서 네팔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젊은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를 가졌다고 합니다. 언론 보도 외에는 더 자세한 내용을 알기 힘들었는데 문재인 전 대표를 만난 유니세프 네팔 사무소 김형준 씨가 블로그를 통해 이 날 있었던 일을 알려주셨습니다.

김형준씨가 만난 문재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글 전문을 소개합니다.



문재인 전 대표님이 네팔에 온다는 기사를 본 게 한 2주 전, 그리고 어제 난 문 전 대표님을 네팔에서 만나게 되었다.

시작은 다른 기구에서 일하는 J씨께서 문 전 대표님 측에 먼저 연락을 해서 이루어졌다. 유엔이 지진복구 사업을 어떻게 하는지 설명도 하고, 유엔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들도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보자는 아이디어였다. 약간은 생뚱맞을지 모르는 제안에 선뜻 응하셨고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단출했던 방문단

만남이 성사가 되고서도 여러모로 걱정했다. 혹시라도 차에서 기자들하고 막 보좌관들이 줄줄이 내려서 문 전 대표님을 쫒아 다니며 사진을 찍으며 "만들어진" 장면을 연출해내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가 생각했던 "비정치적인" 만남이 "정치적인" 기사로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다행히 평범한 관광객 밴에서 내린 팀은 문 전 대표님과 측근 몇 분, 그리고 현지 코디네이터인 네팔 분까지 단출했다. 사진기라곤 동행하신 분이 가진 작은 카메라 하나. 무엇보다 단출하게 사무실에서 차나 한잔하자며 커피숍까지 갈 필요 없다고 말하신 문 전 대표님이 참 인상 깊었다. 그래서 우리는 간단하게 유니세프와 유엔디피를 방문해서 업무를 설명해드리고 옥상에 있는 간이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나중에 들으니 대사관에서도 의전을 따로 하거나 그런 것이 없었다고 한다. 문 전 대표 측에서도 그렇게 요청을 했다고 하고. 사실 엄밀히 말하면 문 전 대표님은 '전직 국회의원, 전 당 대표, 전 대선후보 = 지금은 일반인'이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해봤다. 그래 불필요한 의전을 없애는 것이 비상식의 상식화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우리도 부담이 없었고, 그런 걸 기대하지 않아 보이던 문 전 대표 측에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네팔에 오는 높으신 분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알기에 문 전 대표님의 방문이 그리 소박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매력적인 사람

정치인은 사람의 마음을 사야한다고 한다. 그것도 짧은 만남과 대화 속에서 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자질일터. 1시간 반 가량 짧은 만남이었지만 문 전 대표는 겸손했고, 경청할 줄 알았고, 따뜻했다. 정치인으로 느껴지기보다 뭔가 큰 어른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불필요한 권위가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진지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그런 분이었다.

대부분 그런 높으신 분들이 오면 젊은이들에게 자기의 이야기를 많이 하기 마련인데 반대였다.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서였을까? 우리가 엄청 얘기했고 문 대표는 끝까지 들으시며 질문도 하시고 그랬다.

나는 문 전 대표님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했지만 한 3가지 정도가 기억이 난다.

첫째, 개발협력이나 원조는 가난한 나라에 퍼주는 시혜의 개념이 아니다. 이 업계도 엄청 전문화 되었고 국제규범이란 것이 있다. K-pop 틀어주고 한국 음식 좀 가져다준다고 그게 원조가 아니다.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려면 개발협력에도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문 전 대표는 한국이 유엔분담금이 많이 늘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며 국민들을 설득하는 작업도 필요한 것 같다는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국제기구에 관심이 많은데 코이카(KOICA)를 예를 들며 정부 차원에서 지원해주는 프로그램들이 많아지고 지속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둘째, 정치를 할 기회가 정치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의 다양한 인재들이 들어와야 하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정치인이 평생 직업이 되시는 분들을 너무 많이 보게 된다고. 특히, 내가 이번 총선 때 관심 있게 봤던 비례대표 후보분이 계셨는데 비례대표가 되지는 못하셨다. 문 전 대표님이 영입한 후보인데, 그런 새로운 전문가들이 들어와서 정치에도 자극을 줘야하지 않겠냐고 말씀드렸다. 그러니 아마 그 후보가 지역구로 나왔으면 더 경쟁력이 있지 않았을까 하며 아쉬워하셨다.

셋째, 마지막으로 덜 권위적인 사회를 만드는데 노력해달라고 했다. 한국사회가 아직 곳곳에서 권위적인 문화가 자리 잡고 있고, 정치판도 그 중에 하나라고. 특히 문 대표처럼 정치의 중심에 있는 분들부터 덜 권위적이여야 하지 않겠냐고. 적어도 국민을 상대할 때는 더욱이나 덜 권위적이여야 하지 않겠냐고. 그런 부탁을 드리며 유권자로서 문 전 대표님을 지켜보겠다고 했다. 물론 나이스하게 말했다.

같이 오신 분들이 재미있으셔서 (특히 소설가 박범신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무엇보다 편안한 환경에서 편하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여기가 네팔이고, 문 전 대표님도 업무의 일환이 아니었으니 그렇지 않았나 싶다. 나중에 다시 만나면 이런 소박한 환경에서 만나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투표가 가장 좋은 정치 참여임은 틀림없다. 허나 영향력 있는 정치인을 직접 만나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꽤나 효과적인 정치 참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전 대표님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 유권자로서 정치인에게 한국정치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를 전달할 수 있었다는 것, 특히나 내가 일하는 유엔,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관심의 씨앗을 뿌릴 수 있었다는 점이 참 의미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문 전 대표님이 귀국 후에 어떤 일을 하게 되실지 모르겠지만, 개인으로의 문재인 씨가 되었든, 정치인으로의 문재인 씨가 되었든, 네팔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이 좋은 열매로 맺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재인탐구생활에 글을 올릴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김형준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네팔 지진 이후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구호 활동을 계속하고 계시는 네팔에 계신 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출처: http://m.blog.naver.com/kipinsoul/220236317997 네팔에서 만난 문재인 대표님


2016년 7월 2일 토요일

문재인 탐구생활 7화 - 김정숙 여사가 들려주는 ‘문재인과 감나무’이야기

문재인 탐구생활 7화 김정숙 여사가 들려주는 문재인과 감나무이야기



김정숙 여사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부인입니다김정숙 여사는 지난 2012년 9월 10북 콘서트 행사 중에 문재인과 감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문재인은 참 아름다운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당시에는 화제가 된 이야기인데 처음 들으시는 분들도 많으실 거 같습니다김정숙 여사의 목소리로 전해드리겠습니다참고로 김정숙 여사와 대화를 나누는 분은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입니다.


유튜브 https://youtu.be/XkJV3GSAzKA  49:10 ~ 52:26











이 사람이 굉장히 아름다운 사람이에요우리 집이 이사 갔을 때 감나무가 하나 있었습니다그 감나무는 오래되지는 않았는데요꽤 연령이 오래된 나무였는데 감은 안 열리고 잎만 매일 무성해요.

옆집 담 너머의 감은 주렁주렁 열렸는데 우리 감은 안 그러니까 제가 조바심이 나서는 일 년은 정성껏 감나무에 거름도 주고 뭐도 주고 이러고 했어요남편하고 야생화를 좋아해서 봄마다 야생화를 갖다 심는데야생화가 비쌌거든요그런데 그 야생화가 감나무 잎이 무성하니까 다 그 다음 해에는 안 나는 거예요응달이 돼 갖고. 2년째도 또 그랬어요.

3년째가 돼서 남편한테 으름장을 놓았어요.
만약에 당신 있잖아올해도 이 감나무가 감을 안 열면 이 감나무 잘라버릴거야” 이랬어요왜 3년을 기다렸냐면 이 사람이 풀 한 포기 뽑는 것도 아까워하고 나뭇가지치는 데도 그렇게 아까워했어요.
저는 꽃꽂이를 해갖고 과감하게 가지를 치거든요그랬다가 (가지치기를하면은 그 날 와 가지고선제가 머리 자른 건 몰라 봐도요나뭇가지 친 것은 알아보면서 있지요그러면서 저를 닥달을 했어요.

3년을 기다리고 나서 그 해 봄에 내가 올 가을에 이 감나무 감 안 열리면 내가 좋아하는 야생화 또 사다 심고안 되겠다 싶으면 잘라 버릴거야.” 이러고서 으름장을 확실하게 놓았어요.

그랬더니 이 사람이요이렇게 보면 감나무를 쓰다듬고 있고 어느 날은 감나무 잎을 만지고 중얼 중얼대고어느 날은 감나무를 싸안고어느 날은 뒤로 싸안고어느 날은 그 밑에 가서 뭘 만지작거리면서 끝도 한도 없이 그러는 거예요그래서 아니 왜 저러나그랬더니 그 해에 감나무에 감이 세 개가 열렸어요.

그래서 내가 너무 놀라서 어머 여보 감이 세 개 열렸다 어머 어머” 이랬더니저희 남편이 이러더라구요. “내가 그 감나무한테 가서 맨날 나는 너를 사랑한다너 잘 커라그렇지 않으면 우리 마누라가 너를 자른단다나는 너를 사랑한다.” 이러면서 여름 내내 봄부터 그랬다는 거 아니예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 이 사람이 이렇게 생명을 사랑하는데 하찮은 나무 자르는 것도 자기 자르듯이 아파하고 이러는데그러고 또 부산에서 변호사 생활하면서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항상 앞장서서 했거든요자기가 사람을 사랑하는 이런 마음은 정말 근본적으로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구나 해서 아 이런 사람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출처
1) 20129월 10일 어쩌면 퍼스트레이디-정숙씨 세상과 바람나다’ 북콘서트
다음카페 젠틀재인 https://youtu.be/XkJV3GSAzKA

2) 2012월 10월 29일 한겨레 커뮤니티 감나무 생명을 지킨 농부 문재인
http://c.hani.co.kr/index.php?mid=hantoma&document_srl=1967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