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2일 화요일

문재인 탐구생활 14화 - 특전사 문재인 이야기(1)

문재인 탐구생활 14화 특전사 문재인 이야기(1)






문재인 전 대표는 경희대 법대 재학 중 유신 독재에 반대하는 집회를 주도했다가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되었습니다출소 이후에는 강제로 징집되어 1975년 8월 육군에 입대하였고 향토사단이라는 창원39사단 훈련소를 거쳐 특전사령부 예하 제1공수 특전여단 제3대대에 배치되었습니다문재인 전 대표의 군대생활은 어떠했을까요?

노창남 전 합참특수작전과장의 이야기가 '그 남자 문재인'에 실려 있어 소개합니다.

나는 33년간의 군 생활 중 대부분을 특전사에서 보냈다. 75년 초겨울당시 나는 중위로 대대작전과 교육장교로 보직되었다대대교육훈련을 전담하는 장교로중위로서는 수행하기 어려운 직책이었다당시는 타자기조차 없이 먹지로 행정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시절이라 사병 없이는 업무 수행이 어려웠다대대인사과장을 찾아 누누이 보충을 건의했지만안중에도 없었다.

언감생심 중위가 무슨 대졸 병사를 받을 수 있으랴고졸 병사라도 달라고 아우성쳤다그러던 어느 날 인사과장이 사무실로 오더니 무지하게 똑똑한 대학재학 병사를 보충해줄 테니 받을래?” 하는 것이었다순간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똑똑한 대졸 병사면 나한테 주겠소벌써 다른 부서에다 인심 썼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찬밥더운밥 가릴 여유가 없었다보충만 해준다면 누구라도 좋다고 할 상황이었다내키지 않았지만 받아들였다이 병사라도 뺏기면 안 되겠기에 직접 인사과 사무실로 뛰어갔다.

인사과 문을 열자 눈이 유난히 동그랗게 크고 보통 키에 때가 꼬질꼬질하게 묻은 야전잠바를 입은 이등병이 앉아 있었다순간 눈이 큰 걸 보니 겁이 많겠군하는 생각이 들었다이것이 문재인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

간단한 신상 파악 정도로 몇 가지 질문을 한 결과 이상한 점을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다온종일 기분이 좋았다그날 저녁아직도 중대 부 팀장을 하고 있는 동기생과 만났다그런데 그 동기생의 중대장이 문재인을 받으려다가 운동권 출신이라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운동권이란 용어가 없었다이런 경우에는 데모하다 들어온 놈”, “형무소 갔다 온 놈이라고 통상적으로 표현하고 그 병사들은 평범한 병사 취급을 받지 못했으며 경계의 대상감시의 대상이었다.

그들과 친한 병사와 지휘관도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였다그래서 장교나 부사관들은 그런 병사 받기를 꺼려했고서로 받지 않으려고 인사실무자에게 압력을 넣기도 했다말하자면 집단적으로 인사 왕따를 시키는 현상이었다나 역시 그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때라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다음 날 인사과장에게 따졌으나 별무소득이었다화가 나서 사무실로 돌아왔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우두커니 앉아 있는 꾀죄죄한 이등병과는 말할 기분이 아니었다이어서 출근하는 과장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자과장 역시 네가 잘 타일러서 데리고 있어라고 했다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그 후 상당 기간 서로 서먹서먹하게 지냈다사회 같으면 친구라고 할 수 있는 나이 차이라서 그런지아니면 법대를 다니다 입영했다는 막연한 동경심 때문인지 함부로 대하기가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나는 문재인 이등병보다 한 살이 많다.

그 후 조금씩 업무를 부여하고 수행하는 과정을 보니 생각보다 훨씬 예의바르고 똑똑했다타자기가 없어서 먹지로 서류를 정리하던 시절이라 컴퓨터에 의한 업무처리보다 다섯 배 이상 힘들고 시간이 소모되는 시기였지만 맡은 임무는 밤이 새더라도 수행하는 걸 보며 조금씩 정이 가기 시작했다.


특전사 문재인 이야기는 몇 회에 나누어서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1) '그 남자 문재인' ‘특전사 교육장교에게 전환시대의 논리 건넨 문재인 일병’, 노창남
2) 다음카페 젠틀재인 문재인 특전사 이야기그리고 폭로 동영상

2016년 7월 11일 월요일

문재인 탐구생활 13화 - 노무현과 문재인의 메모습관

문재인 탐구생활 13화 노무현과 문재인의 메모습관


고 노무현 대통령님과 문재인 전 대표의 공통된 습관이 있다고 합니다무엇일까요두 분은 1982년부터 합동법률사무소를 같이 하셨기 때문에 꽤 오랫동안 함께 한 친구이자 동업자라고 할 수 있는데 성격적으로 차이점이 많은 두 분에게는 공통된 습관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그것은 바로 메모 습관이라고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비서관이었던 송인배 전 양산시 더불어민주당 지역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메모에 대해 강연에서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은 일정이 적힌 A4 용지를 3단으로 접어서 메모하고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셨다고 합니다송인배 전 지역위원장도 같은 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 소식지인 청와대 브리핑에서 노무현 대통령님의 메모 습관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7월 14일 아침청와대 본관.
(중략혁신관리비서관이 자리를 뜨고 부속실 직원들만 남게 되자 대통령은 상의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꼬깃꼬깃 접혀진 메모지였다그리고는 메모 하나하나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손바닥만한 크기의 메모지였는데거기에는 대통령의 메모가 어지럽게 적혀 있었다.

어지럽다는 것은 어떤 것은 한 줄의 단어로 깔끔하게어떤 것은 옆으로그런가하면 어떤 메모는 하단에 거꾸로그런 식이었다그래서 대통령은 하나하나를 언급하기 위해 메모지를 옆으로 돌려서 보았다가다시 접어서 뒤로 돌려보았다가또다시 펼쳐서는 거꾸로 보기를 되풀이 하면서 준비해온 생각들을 얘기했다혹시 놓쳐버린 것은 없는지미심쩍었던지 쓰레기통에 한차례 던져 넣은 메모지를 다시 꺼내 펼쳐 보이기도 했다.“











 

문재인 전 대표 또한 양복 안주머니에서 3단으로 접은 A4 용지를 꺼내 사용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13년 11월 26국회의원회관에서 문재인우원식 의원이 주최한 한국사회의 탈원전불가능한 얘기인가란 주제의 토론회 모습을 보면 문재인 의원은 양복 안주머니에서 3단으로 접힌 종이 여러 장을 꺼내고는 그 중 하나를 펴서 그 위에 메모를 시작했습니다같은 해 12월 5국회 매니페스토 연구회 창립토론회에서 찍힌 사진에도 문재인 의원님의 메모습관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A4용지에 메모하는 것은 두 분 중에서 어느 분의 습관이었을까요문재인 전 대표님이 먼저 시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다음카페 젠틀재인에서 제공한 노무현과 문재인 두 분의 메모 습관에 관한 사진은 네이버 블로그 유나톡톡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2004527일 연세대 특강 준비한 노무현 대통령의 친필


김용익 전 의원 트윗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메모



이동하는 KTX안에서 메모하고 계시는 노무현대통령님


송인배 전 비서관이 전해주는 노무현대통령님의 메모습관


출처
1) 노무현사료관, ‘7장의 메모는 어떻게 1시간의 강연이 되었을까’ http://2016archives.knowhow.or.kr/president/story/view/1008

2) 김용익 전 의원의 트윗 https://twitter.com/yikim1952/status/726658328135245825 

3) [문재인노무현 대통령님의 메모지 보관 습관 https://youtu.be/63kCEYlBkt4

4) 다음카페 젠틀재인 문재인 의원님과 노무현대통령님의 메모 습관’ http://cafe.daum.net/gentlemoon/G9kA/4776



2016년 7월 8일 금요일

문재인 탐구생활 12화 - 문재인의 학창시절(2) 건축가 승효상 이야기

문재인 탐구생활 12화 문재인의 학창시절(2) 건축가 승효상 이야기


부산의 명문고인 경남고를 수석입학한 문재인당시 경남고 동기들은 문과 1등은 문재인이과 1등은 승효상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합니다건축가 승효상씨는 <그 남자 문재인>이란 책에서 문재인의 학창시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습니다.


 

1942년 설립된 경남고등학교는 부산고등학교와 부산에서 쌍벽의 명문이다두 학교 모두 평준화가 되기 전에 서울대학교 입시에 매년 150명 이상의 합격자를 낼 정도로 부산과 경남 일대의 수재들은 모두 이 두 학교로 모여들었다.

경남고가 위치한 곳은 대신동인데 지금은 부산의 도시발전 축에서 완전히 비켜나 있지만 원래는 부산에서 부유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어서 좋은 집안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이 경남고로 몰렸다이는 경남지방 출신들이 주로 가던 부산고와 교풍을 다르게 만든 요인이었다구덕산을 가운데 두고 서편의 기슭에 경남고가 있고그 너머 초량에 부산고가 있는 것을 두고 서로를 구덕상고 초량농고로 부르며 놀려대기까지 했다그러니 경남고의 주류는 비교적 부유한 집안환경의 학생들이었으며 이중에서도 경남중학교 출신이면 확실한 주류로 학교의 분위기를 주도했다.

 

나는 여기에 들지 못했다내 부모님은 이북에서 파난 나온 실향민이어서 부산 출신도 아니었고 가난했던 데다가 나는 경남중학교 출신도 아니었다당연히 비주류였다또한 그 다이 나의 주된 관심이 신학의 문제에 있었던 것도 나로 하여금 학교생활을 늘 겉돌게 만들었다삶과 죽음에 대한 사춘기적 고민에 휩싸였던 나는 학교가 끝나면 중국집 이층에서 고량주 나발을 불었고 담배도 연신 피워댔으며 교회 목사와 대립하며 대들었다.

그러나 다음 날 학교에 와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했다학교생활 전체를 통틀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나는 날이 많았다그래도 공부는 늘 잘하는 축에 속했고 학교에서는 말썽도 피우지 않았으니 선생님도 나를 사고가 깊은 학생인 줄만 믿고 내게 간섭하지 않았다소위 지능적 불량학생이었다.

 


문재인은 나와 달리 문과반이어서 같은 반도 아니었고 내가 학교에서 늘 비켜나 있는 까닭에 만나 이야기 할 일이 거의 없었다그렇지만 매월 전학생의 전교 성적 석차가 게시되어 늘 앞선 대열에 있는 그의 이름은 눈에 항상 익었다.

그도 말이 없었다그러나 그는 경남중학교 출신이어서 공부도 잘하는 그가 당연히 주류에 속한 학생일 것으로 여겼다아마도 수도 없이 교정에서 만나고 헤어졌을 떼지만그때마다 우리는 서로 말없이 빙긋이 웃기만 했을 뿐이다.

문재인의 소식을 졸업 후에 처음 들은 것은 1970년대 초 대학 시절이었다놀랍게도 그가 재수한 후 경희대 법대생이 되었다는 것이다그는 내가 알고 믿는 한 서울대 법대생이어야 했다뭔가 이상했다그러고는 알게 되었다그도 나처럼 이북에서 피난 온 집안 출신이며 역시 가난했고 원래 비주류였다고 했다.그래서 늘 말이 없었던가한참을 지나 1989년도 부산 동의대 사건 대 변호사로 등장한 그를 보며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그는 확실히 비주류요아웃사이더적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도시와 산의 경계부에 위치한 경남고는 담장 밖이 바로 숲이어서 수업 중에도 담을 슬쩍 넘어 산중으로 가는 학생들이 꽤 있었다학교라는 경계를 벗어나 찾은 불량한 자유여서 수원지에 앉아 술을 마시는 애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냥 조용히 앉아 생각에 잠겨 있곤 했다자주는 아니지만 나도 몇 번을 넘나든 적이 있는데 숲을 지나다 이따금 마주치는 애들은 경계안의 시가에서 보면 모두 문제아들이었다문재인에게 물어보진 않았지만 혹시 그도 몇 번은 넘어 왔었을 게다.

문재인은 언제든지 우리 사회의 주류로서 기성제도권의 경계 속에 잘 머물수 있었다고등학교 때도 그랬다그러나 그는 늘 그 주류적 위치를 거부하고 경계 밖으로 나갔다.

역사적으로 사회를 주류가 바꾼 적이 없다마틴 루터 킹 목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이는 창조적이고 헌신적인 소수라고 했다내가 본 문재인은 철저히 이에 속한다.

 



승효상 씨는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설계하신 분으로 유명합니다. 2012, CBS라디오 <김미화의 여러분>에 출연한 승효상씨가 경남고 동기 문재인에 대해 이런 말씀을 하기도 했습니다.

문재인은 1등을 했지만 저는 한 번도 1등 한 적이 없어요문재인은 공부는 잘했지만 항상 아웃사이더 적으로 놀았어요아웃사이더가 원래 기존 제도에 비판적 관심이 있죠지금도 말이 없지만 그 때도 도통 말이 없었어요.”






문재인과 승효상  아드님결혼식때 기념촬영함 사진출처 http://cafe.daum.net/gentlemoon/G9kA/4747

출처
1) <그 남자 문재인> 2012리얼리스트, ‘역사를 바꾸는 것은 창조적 소수’ 승효상
2) 경향신문 2009년 8월 9,‘대통령 묘역 공간디자인 한 건축가 승효상
3) 노컷뉴스 2012년 9월 7승효상 "광화문광장세계 최대 중앙분리대"

2016년 7월 7일 목요일

문재인탐구생활 11화 - 인권변호사 문재인의 칼럼

문재인탐구생활 11화 - “인권변호사 문재인의 칼럼


문재인 전 대표가 20여 년간 인권변호사로 활동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문재인 변호사는 1991년 11월 7일 한겨레신문에 갈수록 악화되는 재소자 인권이란 제목의 칼럼을 기고한 적이 있습니다문재인의 역사를 기록하는 다음카페 젠틀재인에서는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뉴스 라이브러리 중 문재인 의원님 옛날기사>를 수집하고 있는데 여기에 올라온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1991년 10월 27일 한겨레신문 1면에 실린 농민운동가 두 명의 가혹행위에 관한 사진은 네이버 블로그 유나톡톡에 문재인 변호사 칼럼 전문과 함께 올려두었습니다그리고 대용감방이란 구속사건이 검찰로 송치되었음에도 관내 구치소가 없는 경우 1심 재판이 종결 때까지 구속피의자가 수용되는 경찰서 유치장을 말하는데요수용자 인권침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경찰서 대용감방이 2015년이 되어서야 모두 폐지되었다고 합니다.


갈수록 악화되는 재소자 인권
엠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가 해마다 발간하는 국제인권보고서는 시국관련 재소자의 수와 그들이 받는 처우로써 각국의 인권상황을 설명하고 있다시국관련 재소자의 수와 그들이 받는 처우야말로 그 나라의 인권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6공화국 들어 시국 재소자의 수가 급증하자 이들에 대한 집단폭행 등 가혹행위 사건이 전국 각지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이는 겉으로 민주화를 내세우고 있는 6공화국의 인권상황이 속으로는 오히려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대한변협이 6일 발표한 '90년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90년 11월 현재 시국관련 구속자는 모두 1872명으로 88년의 779, 89년의 1315명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지적됐다.

며칠 전 보도된 정주경찰서의 농민운동 재소자에 대한 가혹행위 사건은 가혹행위 장면의 사진까지 생생하게 보도되어 큰 충격을 주었다농민이 쌀 제값받기 운동을 하다가 구속된 것만도 억울하고 분통터질 일인데, 5일 동안 점심을 굶긴 채 매일 9시간씩이나 수갑을 채워 쇠창살에 매달아두다니... 더구나 쌀 수매 값과 수매량 때문에 전국의 농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터에... 기가 막힐 노릇이다.

가혹행위 사진 충격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고 발뒤꿈치가 쳐들린 채 쇠창살에 매달려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농민운동가 허윤하 씨의 사진은 이 땅 농민들의 지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이 땅의 인권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또 근래 출감한 사상범 장기수들을 통하여 지난날 그들이 교도소 안에서 전향을 강요당하면서 오랫동안 겪었던 무지막지한 고문과 구타 등 가혹행위의 체험담을 들으면 누구나 참담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우리는 이런 일을 외면하면서 인권이니 민주화니 흰소리만 늘어놓고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일이 언제까지 계속되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정주경찰서 사건은 결코 우발적이라고 할 수 없는두가지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그러한 구조적 문제점들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없으며재소자의 인권보장이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우연 아닌 구조적 문제
첫째미결구금자의 처우문제이다우리 헌법은 형사피고인이라 할지라도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됨을 천명하고 있다따라서 유죄의 판결이 확정되지 아니한 미결구금자는 무죄로 추정되고 있는 상태이므로 비록 구속되어 있다 하더라도 신체의 자유만 제한될 뿐 그 이상의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접견서신이 자유로워야 하는 것은 물론 원하는 대로 신문을 보고 라디오를 들을 수 있어야 하며자유롭게 집필할 수 있어야 하고재판에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가족과 재판대책을 협의하고 유리한 변론자료를 수집하여 활용하는 등의 방어 준비행위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행형법은 미결구금자에 대한 별도의 처우규정을 두지 않고 수형자에 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다이 때문에 미결구금자는 노역을 하지 않는 점만 다를 뿐 수형자와 거의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되며수형자와 거의 같은 처우를 받고 있다미결구금자들이 재판을 받기도 전에 미리부터 범죄자로 취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점에서 행형법은 위헌적인 법률일 뿐 아니라 근대적 형사사법의 정의에 반하는 악법이므로 개정이 시급하다.

둘째대용감방의 문제이다현재 전국적으로 미결구금자를 수용하는 구치소가 턱없이 부족하여 웬만한 중소도시와 지방에서는 경찰서 유치장을 대용감방으로 이용하고 있다심지어 인구가 70만 명에 이르고 인근의 언양과 양산을 합치면 80만 명이 훨씬 넘는 울산과 같은 대도시조차 구치소가 없어 미결구금자를 각 경찰서 유치장에 나누어 수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경찰서 유치장이란 문자 그대로 사건이 검찰에 송치될 때까지 일시적으로 유치하는 시설에 불과하기 때문에 미결구금자의 재판이 끝날 때까지 수개월씩 장기간 구금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이 때문에 미비한 시설로 인하여 미결구금자의 처우는 열악해질 수밖에 없고더구나 경찰의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격무에 시달리는 터에 본연의 임무가 아닌 귀찮은 잡무를 떠맡는 셈이므로 미결구금자 처우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열악한 처우와 각종 비리심지어 경찰의 가혹행위까지 마구 자행되어 대용감방이 인권의 사각지대로 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소자는 별세계의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우리들의 일부이다그들을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하고서는 민주화를 말할 수 없다그들의 처우와 인권상황에 모두들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법률 · 제도개선 시급
특히 미결구금자는 형사소송법상 무죄로 추정되는 가운데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막강한 경찰 및 검찰과 맞서 자신을 방어하여야 할 지위에 있는 사람이다그들에 대한 인권유린과 열악한 처우는 한쪽 선수를 묶어 놓고 권투시합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미결구금자들이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정신에 걸맞게 대접받을 수 있도록 법률의 개정과 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

 

출처
1) 한겨레신문 1991년 10월 27일과 29, ‘농민운동수감자에 가혹행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2) 다음카페 젠틀재인 19911107(한겨레신문/문재인 변호사 단독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