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1일 유나톡톡 153 박근혜의 국정역사교과서는 이렇게 만들어질 것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싸고 많은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역사관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 할 것이라고 봅니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박 대통령의 평가가 어떠한가에 대해 알아야 앞으로 전개될 역사국정교과서에 대한 예측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뉴스타파는 지난 9월 14일 아주 의미 있는 자료를 보도했습니다.
1989년 5월 19일, 박근혜 현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하기 이전에 MBC 박경재의 시사토론 ‘박근혜씨, 아버지를 말한다’에 나와 2시간 동안 방송한 내용 전문을 공개한 것입니다. 5.16쿠데타가 지난 지 28년 후이며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지 10년 가까이 된 시점이었습니다. 자연인 박근혜가 정치인이 되기 이전에 아버지 박정희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앞으로 역사국정교과서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예상하게 해주는 대목이 많았습니다. 주요 내용만 옮깁니다.
출처: 뉴스타파 갈무리화면
1. 침묵을 깨고 방송에 나온 이유는?
그 동안에도 아버지에 대해서, 특히 아버지가 하신 일에 대해서 제가 판단하기에는 왜곡된 여러 가지 평가라든가 그런 보도를 수없이 접해오면서 참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어요.,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니까 저도 그런 기회에 부모님에 대해서 잘못된 것을 하나라도 바로 잡는 것이 자식 된 도리가 아니겠는가 싶어 적극적으로 응해 왔습니다.
2.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 당시 후계자를 구상하셨다는 데 그게 사실인지요?
목숨을 내걸고서 정말 5.16 혁명을 한 후에 자주국방과 자립경제는 아버지 평생의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하신 일인데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나라를 조국 근대화를 해 놓으신 다음에 누가 그거를 제대로 잘 지켜나갈 것인가 그걸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셨겠어요.
3. 5.16을 어떻게 평가하세요?
요즘 5.16을 평가하는 신문들의 표현을 보면 그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가 안 되고 그냥 어떻게 군인이 정치에 개입하느냐, 헌정을 중단시켰다,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식의 비판 일변도로 나오는데 저는 그런 글을 읽을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하냐면 그럼 5.16이 없다, 더 나아가 유신이 없다고 할 때 과연 그 5.16을 비판하고 매도까지 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족들을 데리고 사는 이 땅이,이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이 굶어 죽어갈때는 그 사람에게 복지정책이 어떻고는 의미 없는 이야기. 일단 먹여서 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단 사람을 살리는 것이 최선의 길인데. 나라가 없어지는 판인데 민주주의를 중단시켰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나올 수가 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4. 박정희 대통령이 만주군 장교를 하셨고 일본군 장교를 하셨고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가 남로당에도 있으셨다가 유죄를 받으셨죠?
유죄를 받은 거와 실제와 다르다면 그거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억울하신거죠.그건 아버지가 그 때 그런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이 몇 번 찾아왔는데 아버지는 그 사람의 정체를 모르시고 그런건데 아버지는 그걸 모르시고 연루가 된 억울한 것이죠.
5. 유신을 찬성했던 사람들은 아첨을 한 게 아닐까요?
저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제가 유신에 대해서 옳다고 그 불가피성을 주장하고 또 그것에 대해서 인터뷰를 한 것이 많은 호응을 받았어요. 그럼 그분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가요? 신문에 이렇게 나는 것, 뭐 유신이 어떻다 하고 비판하는 글을 쓰는 그 사람들만이 지금 국민은 아니잖아요.
6. 김대중 납치사건은 어떤가요. 일본에서의 납치사건?
그것도 그땐 어머니가 살아 계셨을 땐데, 아침에 그게 신문에 났거든요. 그러니까 아버지하고 어머니 두 분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서로 의아하게 놀라셨고, 두 분이 이렇게 저렇게 말씀을 나누시는 가운데 결론이라기보다도 추측으로 내리시는 판단이, 이것은 아버지가 시키지 않으셨으니까 감히 어떻게 했을 것은 상상도 안 되고 북한에 서 그렇게 조작을 해서 한국정부를 궁지에 몰려고 이런 식으로 한 게 아니겠느냐. 자세한 것을 알아봐야 되겠다고 하시며 지하 서재로 내려가셨죠.
7. 72년에 7·4공동성명을 하시고 바로 그해 유신을 했지 않습니까? 10월 17일 불과 석달후에. 그래서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자기의 직권연장에 이용한 나쁜 선례를 남겼다, 이런 비판에 대해서 어떻게 반박하실 수 있겠는지요?
그게 바로 역사의 왜곡이예요. 우리가 일본 사람한테 왜 남의 나라 역사를 왜곡하느냐고 우리가 데모도 하고 그랬는데, 물론 일본도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하면 안돼지만, 우리도 우리 스스로의 역사를 왜곡하면 안돼요. 왜,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정말 욕을 먹고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한 결정을 직권을 연장하기 위해서 안보를 이용했다, 그렇게 말을 갖다 붙여서 자라나는 세대도 전부 그렇게 알아듣도록 한다는 것, 이건 얼마나 큰 왜곡이에요?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 역사가 왜곡이 된다는 건, 남에 의해 왜곡되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집권연장을 위해서 안보를 이용했는가, 그렇지 않으면 정말 그때 그런 상황이었는가 하는걸 잘 연구를 해보고서 얘기를 해야지. 그냥 그렇게 갖다 붙여서 얘기를 한다는 건 자라나는 청소년과 우리 역사에 죄를 짓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8. 박대통령의 유지를 이어받는다고 스스로 말씀하신 신민주공화당에 대해서는?
만약에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는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해요. 지금, 그 동안 매도당하고 있던 유신, 5·16 거기에 대해서 나는 이런 이런 소신을 가지고 참여했었다. 그런데 그게 뭐가 잘못됐느냐, 딱딱! 정말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일했던 사람이라면 그것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해요. 어떤 비난을 당장은 받는다 하더라도. 그래서 그것을 잘 몰랐던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하고 설득시킬 수 있어야 되고, 그런게 정치죠!
9. 가장으로서의 박정희씨를 어떻게 평점하시겠습니까?
저는 아버지에 대해선 그리운 마음으로 머리끝까지 차있고, 또 어떻게 평점을 내리고 말고 하는 것보다도 아유, 이렇게 억울하게 그 동안 당하셨는데 이걸 어떻게 벗겨 드려야 돼나 그런 생각으로 꽉 차있기 때문에 저한테 그런 걸 물으신다는게…
10.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은?
5·16이 가까웠기 때문에 이 인터뷰가 된 것이므로 5·16에 대해 한마디를 더 하자면 4· 19 의거는 말하자면 잘못된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서 희생을 무릎 쓰고 일어난 혁명인데,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일어난 5·16혁명도 그런 의미에서 4·19의 뜻을 계승하고 있다. 저는 그렇게 보구요. 또 5·16이 있었기 때문에 4·19때 희생된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목숨까지 버렸는데 4·19후 그 혼란의 와중에서 만약 우리나라가 공산당의 밥이 됐다면 그 희생이 무슨 가치가 있어요.
마지막으로 아까 유신에 대한 얘기가 중간에 끊어져서 말을 못했는데 특히 유신과 자주국방은 뗄레야 뗄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자주국방과 자립경제를 그 기간 안에 이루기 위해서 아버지가 유신을 하신 것이기 때문에. 또 아버지가 생전에 유비무환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셨는데, 아버지의 그 유비무환 정신이 이 자주국방에서와 같이 잘 나타날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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