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탐구생활 19화 – 서대문형무소(서울구치소) 수감생활 이야기
지금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개관하여 역사 교육 현장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문재인 전 대표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인 1975년 서대문형무소는 ‘서울구치소’로 이용되면서 민주화운동 관련 인사들이 수감되던 상징적인 곳이었습니다. 경희대 법대생이던 22살의 문재인 전 대표도 유신독재에 맞서는 시위를 주도하다가 4개월간 서울 구치소에서 수감 생활을 했습니다.
문재인의 책 ‘운명’에는 구치소 수감생활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 있습니다.
서울 구치소 수감생활은 견딜 만 했다. 잘 지낸 편이었다. 원래 시국사범은 노란딱지 요(要)사찰이어서 독방에 수감된다. 그때는 시국사범이 넘쳐서 일반사범 방에 수용했다. 한 방에 8명 정도였다. 어떤 사람들은 독방이 좋다고 했는데, 나는 일반사범과 함께 있는 혼거(混居)방이 좋았다. 세상 공부, 인생 공부가 됐다.
옆방에 한승헌 변호사가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계셨다. 내가 옆방에 수감되자 교도관을 통해 러닝셔츠와 팬티 한 벌씩을 보내주셨다. 아무 준비가 없던 때여서 큰 도움이 됐다.
감방에선 재소자를 속칭 돈 많은 ‘범(虎)털’과 돈 없는 개(犬)털‘로 나눈다. ’범털‘과 ’개털‘은 징역살이가 다르다. 세상에서 감옥 만큼 돈이 적나라하게 위력을 발휘하는 곳도 없다. 우리 방은 ’범털‘과 ’개털‘이 반반쯤 돼 형편이 괜찮은 편이었다. ’범털 방‘과 ’개털 방‘은 아침에 허용하는 세면 시간도 달랐다.
같은 방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나를 ‘학생’이라고 부르며 잘 대해줬다. 나도 명색이 법대 4학년이고 사법고시 1차 시험에 합격한 경력이 있어서, 재소자들이 탄원서나 진정서를 쓸 때면 도움을 줬다. 그러자 다른 감방 사람들까지 도움을 청하곤 했다.
감방 생활 중 잊혀 지지 않는 일이 있다. 그 때 구치소 주변엔 비들기가 많았다. 수감된 사동 앞마당에 비둘기가 떼로 내려앉곤 했다. 심심할 때 내려다보면 구경거리였다. 남긴 밥을 비둘기에게 던져주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방은 여유가 좀 있어서 ‘사식’을 사먹는 사람이 많았다. 간식도 많이 사먹었다. 간식이래야 건빵이었는데, 마가린데 달걀노른자를 버무려서 크림처럼 만든 것에 찍어 먹으면 먹을 만했다. 자연히 식사 때마다 구치소에서 주는 ‘관식(官食)이 꽤 남았다. 내가 그걸 모아서 비둘기에게 던져줬다.
그게 계속되자, 비둘기들은 시간이 되면 우리 방 근처로 모여들어 밥을 기다리곤 했다. 그런데 내가 밥을 던져줄 때마다 건너편 소년수 감방의 소년수들이 창가에 모여 비둘기들이 서로 다투며 밥을 받아먹는 광경을 구경했다. 나는 처음에 그들이 재미삼아 그 광경을 구경하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재미로 구경하는 것이 아니었다. 비둘기에게 던져주는 밥덩이가 아깝고 먹고 싶어서 그렇게 보는 것이라고 누군가 알려줬다. 깜짝 놀랐다. 그런 줄도 모르고 비둘기에게 남는 밥을 던져주면서 좋아했던 내가 정말로 부끄럽고 미안했다. 소년수들은 모두 ‘개털’이어서 식사 때 주는 ‘관식’말고는 먹을 게 없었다. 그러니 늘 배가 고플 수밖에 없었다. 그 후부터는 감방 동료들의 협조를 받아 관식을 한 두덩이 손대지 않고 통째로 남겨 소년수 감방으로 보내줬다.
4개월 후 문재인은 징역 10월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된 지 얼마 후 강제 징집을 당해 입대하게 됩니다.
2012년 6월 17일,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은 자신이 옥살이를 했던 서대문 형무소를 둘러본 뒤 서대문 독립공원 독립문 앞 광장에서 출마선언문을 통해 당내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2017년 문재인 전 대표는 어디에서 대선 후보 출마 선언을 할지 궁금합니다.
출처
1) 다음카페 젠틀재인 ‘6월17일(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방문’
2) 연합뉴스 2008년 1월 8일, 서대문형무소 내부
3) 문재인의 운명, 가교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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