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탐구생활 14화 - 특전사 문재인 이야기(1)
문재인 전 대표는 경희대 법대 재학 중 유신 독재에 반대하는 집회를 주도했다가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출소 이후에는 강제로 징집되어 1975년 8월 육군에 입대하였고 향토사단이라는 창원39사단 훈련소를 거쳐 특전사령부 예하 제1공수 특전여단 제3대대에 배치되었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의 군대생활은 어떠했을까요?
노창남 전 합참특수작전과장의 이야기가 '그 남자 문재인'에 실려 있어 소개합니다.
나는 33년간의 군 생활 중 대부분을 특전사에서 보냈다. 75년 초겨울, 당시 나는 중위로 대대작전과 교육장교로 보직되었다. 대대교육훈련을 전담하는 장교로, 중위로서는 수행하기 어려운 직책이었다. 당시는 타자기조차 없이 먹지로 행정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시절이라 사병 없이는 업무 수행이 어려웠다. 대대인사과장을 찾아 누누이 보충을 건의했지만, 안중에도 없었다.
언감생심 중위가 무슨 대졸 병사를 받을 수 있으랴! 고졸 병사라도 달라고 아우성쳤다. 그러던 어느 날 인사과장이 사무실로 오더니 “무지하게 똑똑한 대학재학 병사를 보충해줄 테니 받을래?” 하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똑똑한 대졸 병사면 나한테 주겠소? 벌써 다른 부서에다 인심 썼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찬밥, 더운밥 가릴 여유가 없었다. 보충만 해준다면 누구라도 좋다고 할 상황이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받아들였다. 이 병사라도 뺏기면 안 되겠기에 직접 인사과 사무실로 뛰어갔다.
인사과 문을 열자 눈이 유난히 동그랗게 크고 보통 키에 때가 꼬질꼬질하게 묻은 야전잠바를 입은 이등병이 앉아 있었다. 순간 ‘눈이 큰 걸 보니 겁이 많겠군’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문재인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
간단한 신상 파악 정도로 몇 가지 질문을 한 결과 이상한 점을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다. 온종일 기분이 좋았다. 그날 저녁, 아직도 중대 부 팀장을 하고 있는 동기생과 만났다. 그런데 그 동기생의 중대장이 문재인을 받으려다가 운동권 출신이라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운동권’이란 용어가 없었다. 이런 경우에는 “데모하다 들어온 놈”, “형무소 갔다 온 놈”이라고 통상적으로 표현하고 그 병사들은 평범한 병사 취급을 받지 못했으며 경계의 대상, 감시의 대상이었다.
그들과 친한 병사와 지휘관도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장교나 부사관들은 그런 병사 받기를 꺼려했고, 서로 받지 않으려고 인사실무자에게 압력을 넣기도 했다. 말하자면 집단적으로 ‘인사 왕따’를 시키는 현상이었다. 나 역시 그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때라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다음 날 인사과장에게 따졌으나 별무소득이었다. 화가 나서 사무실로 돌아왔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우두커니 앉아 있는 꾀죄죄한 이등병과는 말할 기분이 아니었다. 이어서 출근하는 과장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자, 과장 역시 “네가 잘 타일러서 데리고 있어”라고 했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 후 상당 기간 서로 서먹서먹하게 지냈다. 사회 같으면 친구라고 할 수 있는 나이 차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법대를 다니다 입영했다는 막연한 동경심 때문인지 함부로 대하기가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나는 문재인 이등병보다 한 살이 많다.
그 후 조금씩 업무를 부여하고 수행하는 과정을 보니 생각보다 훨씬 예의바르고 똑똑했다. 타자기가 없어서 먹지로 서류를 정리하던 시절이라 컴퓨터에 의한 업무처리보다 다섯 배 이상 힘들고 시간이 소모되는 시기였지만 맡은 임무는 밤이 새더라도 수행하는 걸 보며 조금씩 정이 가기 시작했다.
특전사 문재인 이야기는 몇 회에 나누어서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1) '그 남자 문재인' ‘특전사 교육장교에게 전환시대의 논리 건넨 문재인 일병’, 노창남
2) 다음카페 젠틀재인 ‘문재인 특전사 이야기, 그리고 폭로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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